양준일을 왜 당시에 수용하지 못했을까?

    어제 슈가맨3에서 양준일이 나오면서 슈가맨이 역대급으로 가장 큰 관심을 받지 않았나싶다. 다음주는 에즈원(As One)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뭐 2인조에 R&B 가수라고 하니...) 이정도면 JTBC에서 슈가맨3에 얼만큼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슈가맨3에 나온 양준일

    태사자 -> 양준일 -> 에즈원의 3연타석 홈런을 날릴 것이라 충분히 생각할 수 있겠다. 아무래도 에즈원쪽은 2연패를 한 유희열쪽으로 가지 않을까 싶으며, 양준일이 데뷔하던 당시 한국의 가요계를 정리해보도록 해보겠다.

     

    슈가맨3 3화의 예상 인물 에즈원(안나오면 성을 간다...)

    솔직히, 필자는 레베카라는 노래를 잘 알지 못했다(들어보긴 했지만..). 이게 아는건지 모르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가나다라마바사"라는 곡과 양준일이라는 이름은 익숙하고 후에 내놓은 V2의 Fantasy는 매우 잘 알고 있는 곡이었는데 V2가 양준일의 곡이라는 것은 예전에 검색해서 알고 있었다.

     

    문제는 당시 내가 양준일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큰 관심이 없었다는 뜻이다. 아무래도 나와같은 사람들이 많았을 텐데 92년도에 서태지와 아이들에게 쇼크를 먹었던과는 달랐다. 지금보면 서태지보다 더 힙한데 왜 서태지는 쇼크먹고 1년전에 나온 양준일에게는 충격을 먹지 못했을까?

     

    아무래도 이건 90년대 초가 한국 가요계가 들썩일 정도로 엄청나게 바뀌고 있는 태동기 시대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90년도가 시작되기 전 80년도말에는 한국 가요계하면 내 머리속에 떠오르는 가수들은 소방차, 김완선, 이선희, 조용필 이런 가수들이었다. 이 중에 김완선 정도만 지금들어도 촌스럽지 않고, 소방차 같은 경우는 당대 최고의 남성 아이돌(?) 이지만 너무 일본스러운 느낌이 강하고 촌스러운 그룹이었다.

     

    90년대를 강타한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의 김완선 지금봐도 세련됐다

     

    91년도가 되면서 한국 가요계는 정말 많은 가수들이 나타나고, 해외에서 엄청난 가수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물론 마이클잭슨은 80년대부터 인기가 있는 가수였지만, 뉴키즈 온더블럭은 한국에서 분명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였고, 후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오게 되는 1등 공신이라 생각한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나오게 만든 1등 공신인 뉴키즈 온더 블록

     

    즉 90년대에는 한국에 일본풍의 아이돌과 성인 가요가 잠시 멀어지고, 미국을 필두로 댄스 음악인 뉴잭스윙, 힙합과 같은 곡들이 폭포수처럼 내려치기 시작을 한다. 양준일은 해외파였기 때문에 당시 가장 미국의 흐름 그 자체였고, 한국은 아직 양준일을 수용하지 못하였다는 것이 문제다. 

     

    91~92년도에 수많은 댄스그룹들이 나타나면서 그 중심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듀스, 룰라, 박진영, 터보, DJ DOC와 같은 댄스 그룹 전성시대를 만들며 90년대의 황금기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당시 양준일과 비견될만한 세련된 솔로 댄스가수는 김완선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인기 최고였던 소방차와 어찌보면 포지션이 비슷한 박남정은 지금보면 내가 왜 이 가수들을 좋아했지? 라는 생각으로 촌스럽지만 김완선은 지금봐도 세련되었고 노래도 지금 들어도 전혀 트렌드에 밀리지 않는 것 같아서 즐겨듣고 있다. 

     

    마지막으로, 레베카와 동년도에 나온 91년도 노래중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곡인 임재범 1집의 "이밤이 지나면"을 들어보도록 해보자. 양준일도 대단한 가수지만, 진짜 임재범 전성기는 한국을 뉴올리언스로 바꾸는 힘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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